┌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┐ │ ▶ 번 호 : 1706/13455 ▶ 등록자 : JK0620 │ │ ▶ 등록일 : 1997년 11월 12일 05:05 │ │ ▶ 제 목 : 미움의 덩어리 │ └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┘ j:난 그대를 데리러 왔소. e: 전 결혼 했고 변했어요. j:그래, 불행하게 됐군! e:이젠 사랑의 진실도 없이 미움의 감정만 남았군요. j:난 그대가 없는 동안 사는게 무의미 했어. e:전 이제 누구를 동정 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답니다. j:그래, 변했군! 그래서 데리러 왔지. e:이봐요, 전 변했어요. j:알아. 안락과 향락이 그 몸뚱이에 휘여 감겼어. e:도대체 당신은 누구세요? j:날 소름끼치게 하지 말아. 난 널 용서 못해. e:무엇을 말인가요? j:날 버린 너의 죄의식이지. e:그만, 제발 그만 둬요. 우린 한때 미치도록 사랑을 했죠. 당신이 준 꿈, 미리내 그 진한 향기에 전 질식할 것 같았읍니다. 그것은 마치 악몽처럼 끝난 겁니다. j: 넌 화분 속에 썩은 뿌리를 딛고 선 꽃이야. 살아 있는 것에 깃털을 뽑고 있는 의식의 반짝임이지. 하지만 너의 눈빛은 수정처럼 맑고 별빛처럼 아늑했네. 그곳은 삶의 뿌리이였어. 먼 과거를 보는 신비스런 눈망울이였지. 순수하고 정열적인 눈동자에서 내 이상향을 본거네. 그것을 우린 숙명적 사랑이라 했지. 이제 너에 진흙 묻은 발자국 따위는 문제시 되지 않아. 빗줄기는 곧 끝칠테고 흙탕물은 우리 발끝에서 부드런 흙으로 변하지. 우린 빗속에서 모래성을 쌓진 않았어. 너의 육체에 두개의 둑이 무너져 내리고 궁창이 열려 자존심이란 걸 가졌을 때 이끼진 어둠 속에 질주야. 난 여인의 운명을 알아. 생명에 봇짐지고 가는 그 언덕길 말이야. 진정한 사랑이 없이는 그 발길을 내딛기란 힘들지. e: 당신의 지성은 믿을게 못되는군요. j: 내 감정에서 美辭麗句를 사용케 말아줘. e: 꽃은 시들었어요. 화분 속에서 뿌리를 깊게 내릴 순 없었죠. 전 허탈에 있어요. 남편은 행복이라 했고 당신은 죄의식의 늪이라 했죠. 당신들은 절 장난치고 있군요. j: 그래서 허방다리를 만들어 놨나? e: 제발이지 저속한 표현은 그만둬요. 절 지금도 사랑 하나요? j: 너무도 사랑하지. e: 죽이고 싶도록? j: 그보다 더. e: 저도요. j: 사랑은 개똥이야. e: 싸울게 뭐예요, 빌어먹을! 미안해요. 정말 미안해요. 우리의 사랑을 그렇게 천박스럽고 흔한 것들로 생각치 말아 줘요. 당신은 제 눈빛에서 이상향을 보았다잖아요. 저도 고백하진 않았지만, 정말 하고 싶은 말이였어요. 얼굴이 몹씨 야위고 피로해 보이시는군요. 당신의 행복 제 운명처럼 관심이 있었죠. 당신과의 사랑을 다시 시작 할 수만 있다면... 당신은 제게 꿈만 남겨주고 떠났읍니다. 당신의 품은 늦가을의 시들고 메마른 풀섶에 정다움이였어요. 지난 날 어린 시절에 부친의 무릎위 처럼 느낄 수 있던 곳, 마음은 동심에 젖어 순수 했답니다. 이제 당신은 곁에 없었고 쓸쓸한 공원 벤취에 딱딱하고 차가운 나뭇결만히 빰에 굵은 무늬를 새겼읍니다. 덜 굳은 흙과 덜 퇴색된 사랑의 뒤안길을 밟았죠. 푸르던 시절은 낙옆되어 쌓이고 떡갈나무 앙상한 가지 위엔 희미한 햇살을 뿌렸어요. 미련없이 가버린 당신은 제 기억속에 남았죠. 우린 늦을 뻔히 알면서 사랑을 했고 고운 단풍으로 물드렸어요. 인생에 눈물이 청춘의 여울진 언덕에 흘러 내릴 적 제 윤기진 살갗에 이슬이 맺혔읍니다. 그것은 결코 낭만일 순 없었어요. 참을 수 없는 슬픔 이였죠. 관념의 물방울이 무의식 속에서 피어 오르듯 당신의 그리움으로 부글 거렸어요. 그러나 농도 짙은 미련은 분열을 끝이고 넋에 포화된채 그저 그렇게 미움의 덩어리로 남았읍니다. j: 흙을 빚어 사랑과 우상을 만들고, 긴세월에 그림자로 변할 생명들이 까만 나날에 의식의 매듭을 헝클어 놓았다. 태양의 길목, 오솔길은 허공 위 깃털 속에 안겨 있다. 찬바람 일어 수풀은 쓰러지고 그곳에 숨었던 작은 들국화 시든 잎새와 더불어 고운 사연 띄운다. 走馬燈처럼 넘겨간 세월이 숨결을 멎는다. 하얀 나날이 낯과 밤사이로 얇고 가벼히 우연스레 눈껍풀과 조우한다.